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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觀/ 경주기행] 아픔으로 길을 내려고
영화觀
진명헌 hl@ihalla.com 기자
입력 : 2026. 08.31. 03:00:00

영화 '경주기행'.

[한라일보] 소중한 사람이 살해를 당해서 죽었고 살인범은 합당한 죗값을 치르지 않았다. 죽은 자는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그 가슴에는 분노와 슬픔, 아픔이 뒤엉킨 채로 풀 한 포기조차 자랄 수 없을 것이다. 불처럼 뜨겁게 달궈지고 얼음처럼 차갑게 식는 가슴의 온도는 그 누구도 만져 가늠할 수 없다. 김미조 감독의 데뷔작 <경주기행>은 그 온도를 가늠하고자 시작된 영화일지도 모른다.



낡은 봉고차에 네 모녀가 탑승한다. 엄마(이정은)와 장녀 장주(공효진), 둘째 영주(박소담), 셋째 동주(이연)의 가슴 안에는 8년 전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난 뒤 다시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막내 경주(황현정)가 죽은 채로 살아 있다. 경주의 생일을 맞아 계획된 이 가족여행의 진짜 목적은 살아 있는 살인범을 가족의 손으로 죽이는 것이다. 죽었지만 살아 있는 이와 살았지만 죽여야 할 이가 가족의 봉고차 안에 공존한다.



한 사람의 죽음은 한 가족의 삶을 작은 균열 하나로도 무너지게 할 정도로 메마르게 만들었다. 마음의 불씨는 서로를 덥히는 동시에 태우기도 한다. 가족의 일원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구멍을 마주하는 슬픔은 네 모녀가 공유하고 있지만 8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각자의 삶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심장 위로 돌덩이를 얹은 엄마의 마음을 딸들이 모를 리 없다. 그러나 또 다 알 수도 없기에 이 여행은, 직선의 계획은 종종 흔들리고 어긋난다. 가족은 서로의 손톱을 깎아주는 사이일 수도 있고 손톱 자국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여러 차례 남길 수도 있는 관계다. 그만큼 가깝고 그만큼 위험하다. <경주기행>의 가족들에게는 영원히 아물지 않을 상처 하나가 모두의 가슴 안에 박혀 있다. 어떤 타인도 손 댈 수 없이 깊이 묻혀 있다. 그런데 그 상처의 위로 서로를 향해 내는 생채기들 또한 쉴 새 없이 발생한다. 말로 찌르고 눈으로 꼬집고 돌아선 등으로 할퀸다. 영화는 깊은 상처와 잦은 상처를 숨기지 않은 것으로 가족영화라는 장르의 표면에 균열을 낸다. 나는 <경주기행>이 웃음과 눈물을 교차하는 한국상업영화의 전형성과 닮아 있지 않은 이유도 이 각기 다른 상처들을 호명하는 것으로 인물들이 생생하게 맞닥뜨리는 아픔을 최대한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어서가 아닐까라고 느꼈다.



이 영화의 결말부 엄마가 복수를 감행하는 장면에서는 장르적 쾌감과는 거리가 먼 이상한 통증이 느껴진다. 잔혹한 살인범을 단숨에 죽이는 카타르시스는 <경주기행>의 목적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영화는 이 복수를 감행하고자 하는 이의 지난한 기행, 그 손끝에 닿는 고통의 감각을 관객에게 전이 시키고자 한다. 갑자기 눈물이 떨어지기 전에 관객들이 인물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느껴 보길 간절히 원하는, 그래서 타인의 삶에 가 닿기를 원하는 만든 이들의 마음이 거기에 묻혀 있다. 아픔으로 길을 내려는 시도는 당연히 매끄러울 수가 없을 것이다. <경주기행>이 험한 비포장 도로 위의 로드 무비를 선택한 이유가 아닐까.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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