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지명 표기
[한라일보] '까끄래기'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오름이 있다.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해발 429m 정도에 있지만, 자체높이는 49m에 불과하다.
오름 탐방로 안내판에 '까끄래기오름'으로 표기됐으며, '제주의 오름'이라는 1997년 제주도 발행의 책에도 이같이 표기됐다. 1995년 발간한 '오름 나그네'란 책에는 '까끄레기(가끄레기)'라고 표기됐다. 이 오름의 지명은 1703년 탐라순력도에 가질극라지악(可叱極羅只岳), 1910년경 조선지지자료에 '사+ㅅ가+라가+ㅣ'로 표기됐다. 비문 등 지역에서는 각기래기(各其來其), 각수락이악(各壽洛伊岳) 등으로 표기한 것이 채록됐다. 오늘날은 까끄레기오름으로도 불린다.

까끄래기오름, 넓은 평야에 산굼부리오름(오른쪽)과 나란히 이웃해 있다. 김찬수
가질극라지악(可叱極羅只岳)은 갓그라기오름 혹은 가끄라기오름의 음차 표기다. 한자 차용 표기에서 흔히 보이는 방식이다. 즉, 가(可)는 '가'의 음가자, 질(叱)은 발음이 질이지만 '갓'의 받침 'ㅅ'을 위한 음가자 표기, 극(極)은 어두음 '그'를 표기하려고 동원한 한자로서 음가자 표기, 지(只)는 발음 '기'를 표기하는 데 관행적으로 쓰이는 음가자 표기다. 그러므로 1703년 전후에도 이미 까끄레기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지역에서 표기하는 각기래기(各其來其)의 각(各)은 '각'의 음가자 표기, 기(其)는 '기'의 음가자 혹은 '그 기(其)'자이므로 '그'를 표기하기 위한 훈가자 표기, '래기(來其)'는 발음 '라기' 혹은 '래기'를 표기하고자 동원한 글자다. 각기래기(各其來其)란 표기는 결국 '각그래기', '가끄래기' 혹은 어두음 경음화에 의해 '까끄레기'라 발음했음을 보여준다.
각수락이악(各壽洛伊岳)은 각수(各壽)의 '각'에서 어두음 '가'를 취하고, '수(壽)'에서 'ㅅ'을, '락이(洛伊)'에서 '라기'를 표현하려고 했다. 그러면 이 말은 '갓라기' 혹은 '가스라기'가 된다. 이렇게 쓴 분은 '까끄래기'를 풀이나 나무의 가시 부스러기를 지시하는 '가시랭이'란 말로 오해한 것 같다. '까그래기' 그 자체로 이런 뜻으로 쓰는 지방이 있는가 하면, 가시래기, 까스라기, 가스레기, 까시레기 등으로도 널리 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오름이 풀이나 나무의 가시 부스러기와 연관된다는 특성은 찾을 수 없다.
근거를 명확히 제시해야
오늘날의 지명 '까끄래기'의 본디 뜻이 무엇인가에 대한 추측이 다양하다. '오름 나그네'라는 책에서는 제주어 '가꾸다' 또는 '가꼬다'에서 온 말로 풀이했다. 마소를 들에 놓아 살피면서 먹인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까그래기오름 남사면 하단부에 급경사 골짜기가 있다. 김찬수
또 어느 지명 연구서에서는 '깎이다'에서 유래한 것이라면서 제주어 '가끄다' 또는 '가끼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의 관형사형('가끌-')에 '작다(小)'는 뜻을 가진 '-애기'가 붙으면 '가끄레기·까끄레기'가 된다고 했다. 이런 추정의 근거로는 오름 정상 동남쪽이 부분적으로 무너져서 조그만 골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이 오름 지명 '까끄래기'가 소나 말을 '가꾸다'는 말에서 왔다면 다른 오름에 비해서 이 오름에 유달리 이런 이름이 붙을 만한 특성이 있는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발음의 유사성만이 이렇게 추정하는 정황이다.
'깎다'를 의미하는 '가끄다·가끼다'에서 유래했다면 이 오름이 과연 깎였는가? 이렇게 주장하는 분이 말하는 것처럼 부분적으로 무너졌다면 왜 깎였다고 하는가. 깎인 것과 무너진 것은 다르다. 그리고 무너졌다면 노출된 면이 있어야 하는데 이 오름 정상 동남쪽에 깎이기는커녕 무너졌다고 할 만한 지형조차 없다. 정상 동남쪽은 조림한 나무로 숲이 꽉 차 있다. 남쪽은 트여 있는데 이것은 무너지거나 깎인 게 아니라 이 오름 자체가 이곳으로 분화구가 트여 말굽형 오름을 이루기 때문이다. 오름의 형성 당시부터 이런 형태를 한 것이지 여기가 무너지거나 깎인 것이 아니다. 혹여 '까끄래기'가 '깎이다'에서 왔다는 점을 주장하기 위해서 억지로 꿰맞추려 했다면 이건 추론의 방식이라 할 수 없다.
이웃하는 산굼부리와 구별
이 지명 '까끄래기'는 골이 있는 오름이라는 뜻의 '가가르기'에서 기원했을 것이다. 이 오름의 분화구는 남쪽으로 트였다. 이 사면은 바닥에 이르면 바로 급경사로 이어지면서 골을 이룬다. 이 골은 늘 물이 흐르지는 않지만, 작은 비에도 물이 흐르고, 군데군데 물이 고여 호수를 이루는 지형들이 있다. 이 때문에 골이 있는 오름으로 고대인들은 인식했을 것이다. 더구나 바로 서쪽 가까이 산굼부리가 연접한다.
산굼부리는 아래로 깊은 구멍이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본 기획 산굼부리 편을 참고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연접한 두 개의 오름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깊은 구덩이가 있는 오름이고, 또 하나는 골이 있는 오름이라는 뜻이다. 까끄래기오름은 산굼부리오름의 대비지명이다.
'가가르기'가 어떻게 '까끄레기'가 될까? '까그레기'의 '까'란 '골'에서 'ㄹ'이 탈락한 '가'에서 기원한다. 우리 말에서 어두음 경음화가 흔한데 '가'를 '까'로 발음하는 것은 그 현상 때문이다. 또한 '골'이란 북방 고대어에서 매우 다양하게 분화했는데, 그중 만주어와 우데게어의 '골로'(계곡) 등에 비교된다. 이 말은 'ㄹ'이 탈락하면 '고로'가 되고 앞의 '까'와 결합하여 '까고로'가 될 것이다. 국어 '골'이라 해도 개음화하면 역시 '고로'가 된다. 여기에 어조사 '기'가 붙어 '까그래기'로 되고 다시 경음화를 거쳐 오늘날의 '까끄래기'가 된 것이다. 제주 지명에서 '골'이 '가'로 되는 현상과 여기에서 보이는 '고로' 또는 '구리'로 되는 현상은 곳곳에서 보인다. 본 기획 고이오름, 갑선이, 가시오름, 모구리오름 편 등을 참조하실 수 있다. '까끄래기'란 이름은 이상해 보이지만 어원을 풀어보면 골이 있는 오름이라는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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