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요즘 아이들은 심심할 틈이 없어 보인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고, 배울 수 있는 분야도 다양하다. 여기에 학원과 체험 활동, 태블릿 등으로 접하는 영상과 게임까지 더해지면 하루가 부족해 보일 때가 많다. 그런데 아이는 그렇게 바쁜 하루 속에서도 문득 "심심해"라고 말하곤 한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어른들은 곧장 장난감을 꺼내 주거나, 영상을 틀어 주거나, 곁에 앉아 함께 놀아 주며 그 시간을 채워 주려 한다. 아이의 심심함은 어느새 어른이 해결해야 할 숙제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의 심심함이 정말 그렇게 빨리 없애야 할 문제일까.
아이에게 새로운 배움과 경험은 분명 의미가 있지만 모든 빈 시간이 수업과 활동으로 채워질 때, 아이는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아볼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수업과 활동이 긴 시간을 채운다면, 화면은 짧은 틈을 채운다. 기다릴 필요도, 생각을 이어 갈 필요도 없다. 버튼 하나면 곧바로 새로운 자극이 주어진다. 그래서 화면을 줄이자는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화면이 빠진 자리에 아이가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심심할 때마다 화면이 유일한 대답이 된다면, 아이는 지루함을 다루는 연습을 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심심함을 무작정 견디게 하자는 뜻은 아니다. 오래 지속되는 심심함은 아이를 힘들게 할 수 있고, 방치된 시간은 외로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본 연구자들은 2024년 한 논평에서 아이가 지루함에 대처하는 능력을 배워 가는 과정에 주목했다. 핵심은 지루함을 만났을 때 그것을 놀이와 이야기, 작은 시도로 바꿔 볼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그 과정은 대단한 결과물로 시작되지 않는다. 종이를 접었다 펴고, 블록을 쌓았다 무너뜨리고, 인형에게 이름을 붙이는 사소한 일에서 출발한다. 처음에는 어른에게 "뭐 해?" 하고 묻던 아이도 시간이 지나면 자기 방식으로 놀이를 만든다. 그 안에서 아이는 선택하고, 실패하고, 다시 고쳐 보는 경험을 한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시간처럼 보여도 아이 안에서는 생각과 자기 조절의 힘이 자라고 있는 셈이다.
일상의 빈틈은 가까운 곳에서부터 남길 수 있다. 가정에서는 하루 중 짧은 시간이라도 정해진 활동이 없는 시간을 둘 수 있으며, 교육기관에서는 결과물이 분명한 활동만큼 자유 놀이와 느슨한 탐색의 시간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지역사회 역시 아이가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원과 도서관, 마을 공간을 넓혀야 한다.
아이에게 심심할 시간을 남겨 준다는 것은, 어른이 모든 시간을 대신 채워 주지 않는 일이다. 빈틈없는 일정은 어른에게 잠시 안심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아이가 평생 살아가며 필요한 힘은 누군가가 짜 준 일정표를 따라가는 능력만은 아닐 것이다. 심심한 시간을 견디고, 스스로 놀고, 생각하고, 선택해 보는 경험 속에서 아이의 자기주도성은 천천히 자랄 수 있다. <김봉희 제주한라대학교 사회복지학 겸임교수>
■기사제보▷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