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일보다 수입 높았던 물질… 시어머니 권유로 전업녹록지 않던 삶의 버팀목, 울산서 횟집 운영하다 거제로"사람 속은 몰라도 바닷속은 훤해… 저승 가서도 물질
[한라일보] 지난 2일 오후 경남 거제시 하청면 하청리 바다의 해녀 작업장. 물질을 마친 해녀들이 젖은 머리를 핀으로 단단히 고정하고 모여 앉아 앙장구('말똥성게'를 부르는 경상도 방언) 껍질을 까고 있었다.
이곳 해녀들은 배를 타고 나가 5시간가량 물질을 한 뒤 작업장에서 그날 잡은 해산물을 손질한다. 이날 취재진이 찾은 '복천호'는 6~7명의 해녀가 한 팀으로 작업하고 있었다. 봄에는 주로 해삼, 가을에는 톳과 말똥성게를 채취한다.
해녀들은 손질한 말똥성게를 깨끗한 물로 씻어 바구니에 옮긴 뒤 저울로 무게를 쟀다. 선주는 각 해녀의 수확량을 확인해 노트에 옮겨 적었다. 이날 작업한 6명의 해녀 중 가장 많은 수확량을 기록한 이는 홍경자(69) 씨로, 말똥성게 2.1㎏을 수확했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는 홍경자 씨.
작업 현장을 지켜본 취재진에게 홍 씨는 "여기 해녀들은 몬딱(모두) 제주 출신"이라며 고향을 떠나 바다를 누벼온 자신의 해녀 생활에 대해 들려줬다.
홍 씨는 우여곡절이 많았던 삶을 떠올리며 한숨짓다가도 "저승에 가서도 물질을 하고 싶다"고 말할 만큼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1957년생으로 제주시 건입동에서 태어나 도평동에서 자랐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공장일을 시작했다. 과자, 사탕, 아이스크림 공장 등에서 근무하며 일찍이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여름이면 재미 삼아 바다에서 수영하고 전복과 소라 따위를 캐서 동문시장에 팔기도 했다. "그 당시(70년대 후반)에 하루에 5~6만원을 벌었어. 결혼하고 나서는 공장일 때려치우고 물질만 했지."

경남 거제시 하청면 하청리 앞바다.
그는 19살에 결혼을 하고 첫째 아들을 낳았다. 출산 이후엔 시어머니의 권유로 본격적으로 물질을 시작했다.
"내가 미역을 완전 많이 캤거든. 주변에서 시어머니한테 '너희 며느리 상군되켜'라고 했대. 그래서 21살 되자마자 배 타고 나가서 물질했어."
홍 씨의 첫 출향 물질은 경남 통영시 한산도와 비진도였다. 남편의 고향이던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출신 해녀가 제주 해녀 6명을 모집하고, 경남 현지 해녀 3명까지 더해 총 9명이 함께 물질에 나섰다. 이들은 2월부터 8월까지 주로 성게를 채취했고, 인솔자로부터 매달 월급을 받았다. 홍 씨는 한산도 출향 물질을 마치고 제주에 잠깐 머문 뒤 10월쯤 충남 지방으로 다시 물질에 나섰다.
충남에서 1년간 물질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간 홍 씨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홍 씨가 1년 넘게 벌어온 수입을 남편이 모두 써버린 것이다. 홍 씨는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집을 사고 물질을 그만둘 계획이었다.

물질을 마친 해녀들이 말똥성게를 손질하고 있다. 장태봉기자
홍 씨는 하는 수 없이 다시 한산도로 돌아가 물질을 이어갔다.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두 아들을 키우기 위해 바다에 나서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해녀 일과 집안 살림, 시부모 돌봄까지 맡으며 그는 한때 몸무게가 38㎏까지 빠졌다고 전했다. 결국 서른 살이 되던 해에 남편과 이혼한 홍 씨는 거제에 정착했다.
그에게 해녀라는 직업은 그의 자부심이자 믿을 구석이었다.
"말도 못 하게 고생 많이 했다. 그래도 나가(내가) 능력이 있으니까. 완전 상군해녀였어. 작업 나가면 전복을 제일 많이 땄어. 물질하멍 돈도 잘 벌고. 그래서 거제도 와서 집도 사고 혼자 잘 살았어."
홍 씨는 잠시 울산으로 이주해 10년간 횟집을 운영하기도 했으나, 다시 거제로 돌아와 현재까지 물질을 하고 있다. 그는 함께 작업하는 해녀들과 의지하며 지내는 현재에 만족하고 있다고 전했다. "순덕이(동료 해녀) 물질할 때까지 해야지. 여기가 이제 고향 같고, 적적하지도 않아."
얼마 전 몸이 약했던 작은 아들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홍 씨는 붉은 눈시울을 하고서 담담한 목소리로 "지금도 마음이 아파. 그래도 어쩌겠어.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말했다. 아들을 떠나보낸 뒤에도 생계를 위해 작업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녹록지 않은 삶 속에서 홍 씨에게 바다는 무엇보다 '편안함'을 안기는 곳이었다.
"물질하는 건 처음부터 무섭지가 않았어. 바다가 사람 마음보다 더 편안하더라고. 물 밑에는 뭐가 있는지 다 보이잖아. 근데 사람 속은 모르겠어. 그래서 바닷속이 시원하고 편안해. 진짜 물질하기 잘했어."
힘들 땐 잠시 쉬어가더라도, 바다에 가지 않으면 몸이 쑤시는 그다.
홍 씨는 "물질이 아직도 재밌어. 힘들면 한 이틀 쉬는데, 그러면 다시 바다에 가고 싶어. 물질하는 것이 제일 편안하거든. 나는 다시 태어나도 해녀, 저승에 가서도 물질할 거야"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특별취재팀=양유리 기자·장태봉 기자(사진·영상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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