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제주 4·3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고, 국가폭력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와 실질적인 보상금 지급이 논의되는 2026년의 봄. 겉으로 보기에 4·3은 '해결'의 국면에 접어든 듯하다. 하지만 필자의 눈으로 본 제주의 봄은 여전히 시리고 아프다. 이제야 조금씩 지급되는 보상금의 행렬을 따라, 수십 년간 억지로 눌러왔던 이름들이 수면 위로 '끌려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끌려 나온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 이름들은 스스로 걸어 나온 것이 아니라, 국가의 행정적 절차와 생계의 필요에 의해 마지못해 햇볕 아래 놓였기 때문이다. 거기엔 새색시 몸으로 임신한 채 총칼에 찔려 죽어간 고모의 이름이 있고, 할머니의 아버지와 오라비의 이름이 있다. 시신조차 찾지 못해 제사상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행방불명자들, '가마귀 모르는 식개'라도 올려주었다면 다행이라 여겨야 했던 그 비참한 세월이 보상금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쏟아져 나오고 있다. '빨갱이 가족'이라는 낙인 아래 대리 사살까지 당해야 했던 슬픈 영혼들이, 70여 년이 흐른 지금 비로소 법적인 서류 위에서 자기 이름을 찾고 있다.
이 비극은 서류 밖 실존의 삶에서 더욱 생생하게 요동친다. 새벽마다 떠난 남편을 부르는 어머니의 몸속엔 4·3의 통증이 여전히 흐른다.
그러나 필자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여전히 '나오지 못한 이름들'이다. 4·3의 광기 속에서 동족을 향한 총구를 거두고, 주민을 살리기 위해 험한 산으로 들어갔던 9연대 군인들의 이름이 그러하다.
대성한 인물로 칭송받아야 마땅할 그들의 항명은 오랫동안 '반란'으로 치부됐고, 그들의 뜨거운 이름은 어딘가 이름 모를 골짜기에 버려진 채 울분 섞인 환청으로 떠돌고 있다. 국가폭력의 희생자로서의 평가는 진전됐을지언정, 정의를 위해 스스로 가시밭길을 택했던 이들의 명예는 아직 온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현재 4·3에 대한 평가는 '평화와 인권의 상징'이라는 보편적 가치로 격상됐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름 없는 비석, '백비(白碑)'가 여전히 평화공원에 누워있는 한 그 평가는 미완성이다. 진정한 의미의 '정명(正名)'은 단순히 보상금을 나눠 주는 행위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억울하게 죽어간 임산부의 고통을 국가가 정면으로 응시하고, 학살의 명령을 거부하며 인간의 길을 택했던 이들을 '정의로운 항쟁자'로 기록할 때 비로소 4·3은 완전한 이름을 얻을 수 있다.
78주년 추념식을 지나며 우리는 묻는다. 우리는 그 이름들을 진심으로 환대하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행정의 서류 속으로 '끌어내고'만 있는가. 환청으로 떠도는 그 뜨거운 이름들이 비석 위에 당당히 새겨지는 날, 제주의 봄은 비로소 슬픔의 정서를 넘어 '기억의 승리'로 기록될 것이다. 필자는 오늘도 그 이름을 받아 적기 위해 낮은 곳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고나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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