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제주인의 건강보고서 Ⅷ 건강다이어리] (172)풍요 속 영양결핍의 현실

[제주, 제주인의 건강보고서 Ⅷ 건강다이어리] (172)풍요 속 영양결핍의 현실
삼시세끼 잘 먹는데 왜 피곤할까?… ‘풍요 속 영양 결핍’의 역설
  • 입력 : 2026. 08.28(금) 02:00
  • 정혜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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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의 ‘가장 짧은 판자’를 채워야
건강은 세포 수준 영양상태서 시작
과학적 영향평가.기능의학적 검사로
내 몸의 영양상태 파악해 관리 필요


[한라일보] "평소에 무엇을, 어떻게 드시고 계십니까?"

진료실에서 만성 피로와 대사 이상을 호소하는 환자분들을 만날 때 가장 먼저 드리는 질문이다. 대부분은 "삼시 세끼 꼬박 먹습니다", "채소도 잘 먹는데요"라고 답한다. 그런데도 피곤하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근육이 쉽게 지치며, 회복이 더디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칼로리의 문제로 생각하지만, 실제 인체는 칼로리보다 훨씬 정교한 생화학적 시스템이다. 무엇을 얼마나 먹었는가 보다, 그 영양소가 세포 안에서 얼마나 제대로 활용되는가가 건강을 좌우한다.

19세기 독일 철학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는 "사람은 그가 먹는 것으로 정의된다(Der Mensch ist, was er ißt)"라고 말했다. 오늘날 이 말은 철학을 넘어 분자생물학과 기능의학의 관점에서도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가 섭취한 단백질과 지방, 비타민과 미네랄은 소화·흡수를 거쳐 혈액을 따라 이동하고, 세포막을 구성하며, 미토콘드리아에서 에너지를 만들고, 유전자 발현과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재료가 된다. 결국 건강은 세포 수준의 영양 상태에서 시작된다.

▶가장 부족한 영양소가 건강의 수준을 결정한다:리비히의 최소량 법칙=독일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는 식물의 성장을 연구하며 '최소량의 법칙(Law of Minimum)'을 제시했다. 길이가 서로 다른 나무판자로 만든 물통은 가장 긴 판자가 아니라 가장 짧은 판자 높이만큼만 물을 담을 수 있다는 원리이다.

인체도 이와 매우 유사하다.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을 충분히 섭취하더라도 각종 비타민, 마그네슘, 아연, 철분처럼 특정 미량 영양소가 부족하면 수천 가지 효소 반응의 효율이 떨어진다. 특히 세포의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는 ATP를 생성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비타민과 미네랄을 보조인자로 사용한다. 따라서 칼로리는 충분한데도 쉽게 피곤하고 회복이 늦는 이유는 '연료 부족'이 아니라 '점화장치 부족'일 수 있다. 건강은 가장 풍부한 영양소가 아니라 가장 부족한 영양소에 의해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풍요로운 시대의 숨은 영양 결핍=현대인은 역사상 가장 풍족한 식생활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미량 영양소 결핍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이를 '숨은 영양 결핍(Hidden Hunger)'이라고 부른다. 배는 부르지만 세포는 굶고 있는 상태다.

그 배경에는 농업과 환경의 변화가 있다. 수확량 중심의 품종 개량에 따른 영양소 희석 효과, 집약적 농경으로 인한 토양 미네랄 변화, 장거리 유통 과정에서 일어나는 산화로 일부 농산물의 비타민과 미네랄 밀도를 낮춘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여기에 초가공식품과 정제 탄수화물 중심의 식습관은 칼로리는 높지만 영양 밀도는 낮은 식사를 만들기 쉽다. 결국 우리는 과거보다 더 많이 먹지만, 세포가 필요로 하는 영양은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산화 스트레스, 현대인의 또 다른 영양 과제=영양 결핍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산화 스트레스이다. 대기오염, 만성 스트레스, 수면 부족, 음주와 흡연은 모두 활성산소 생성을 증가시킨다. 활성산소는 면역과 세포 신호 전달에 필요한 물질이지만, 과도하게 생성되면 세포막의 지질과 단백질, DNA를 손상시키고 미토콘드리아 기능을 저하시킨다. 이러한 변화는 노화와 만성 염증, 심혈관 질환과 대사질환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

따라서 건강의 기본은 신선한 자연식품을 중심으로 한 식사이며, 필요에 따라 항산화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영양소를 적절히 보완하는 접근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비타민 C와 E는 수용성과 지용성 환경에서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코엔자임 Q10은 미토콘드리아의 에너지 생성과 항산화 기능을 동시에 담당한다. 셀레늄은 글루타치온 과산화효소의 구성 성분으로 작용하며, 아연과 마그네슘 역시 항산화와 면역, 신경·근육 기능 유지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결과가 다른 이유=모든 사람에게 같은 식단이 같은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영양은 섭취보다 흡수와 이용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위축성 위염이나 위산분비억제제를 장기간 복용하는 경우에는 비타민 B12, 철분, 마그네슘의 흡수가 감소할 수 있다. 담즙 분비가 원활하지 않으면 비타민 D와 K 같은 지용성 비타민의 흡수율도 떨어진다. 또한 개인의 유전적 차이도 영양 대사에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으로 MTHFR 유전자 변이가 있는 경우에는 엽산을 활성형으로 전환하는 효율이 낮아 호모시스테인 대사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이때는 '활성형 엽산'과 비타민 B12, B6를 함께 고려하는 맞춤형 접근이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장 건강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장 점막은 단순한 소화기관이 아니라 면역과 영양 흡수의 중심이다. 초가공식품과 과도한 정제당은 장내 미생물 균형과 장 점막 기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며, 건강한 식이섬유와 다양한 자연식품은 장 내 환경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양제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평가'이다=최근 영양제 시장은 어느 때보다 커졌지만, 유행하는 제품이 곧 나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부족하지 않은 영양소를 무분별하게 보충하는 것은 기대만큼의 효과를 얻기 어렵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사적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건강의 출발점은 언제나 균형 잡힌 식습관이다. 그러나 현대의 환경적 부담과 개인의 소화·흡수 능력, 유전적 특성을 고려하면 과학적인 영양 평가는 충분한 의미가 있다. 혈액검사, 비타민 D와 호모시스테인 측정, 적혈구 지방산 분석 등 기능의학적 검사는 현재 내 몸의 영양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무엇이 유행하는 영양제인지 묻기 전에 먼저 질문해야 할 것은 단 하나이다. 지금 내 몸에서 가장 짧은 판자는 무엇인가. 그 부족한 부분을 정확히 찾고, 식습관을 기본으로 필요한 영양을 정밀하게 보완할 때 세포는 본래의 대사 균형을 회복하고 건강한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

< 정혜원 제주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





[건강Tip] 열대야가 부르는 야식의 유혹


왜 유독 여름밤이 되면 야식이 더 당길까? 가장 큰 이유는 열대야로 인한 수면 부족이다. 밤에도 높은 기온이 이어지면 깊은 잠을 자기 어려워지고 수면의 질도 떨어진다. 우리 몸은 수면이 부족해지면 식욕을 자극하는 호르몬인 '그렐린' 분비를 늘리고,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렙틴' 분비는 줄인다. 그 결과 평소보다 허기를 쉽게 느끼고, 단 음식이나 기름진 음식을 더 찾게 된다.

늦은 밤 먹는 음식을 더욱 주의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몸의 생체리듬 때문이다. 우리 몸은 낮에는 에너지를 소비하고, 밤에는 휴식과 회복을 위해 대사를 조절하도록 설계돼 있다. 밤이 되면 인슐린 분비 능력과 인슐린 감수성이 낮아져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낮보다 혈당이 더 높고 오래 유지된다.

문제는 야식 메뉴에도 있다. 치킨, 라면, 피자 등 고지방·고나트륨 야식에 맥주나 탄산음료까지 곁들이면 열량과 당류 섭취도 늘고 소화 불량이나 역류성 식도염, 수면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배고픔을 무조건 참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먹느냐'이다. 저녁 식사를 지나치게 줄이거나 거르면 밤늦게 허기가 몰려오기 쉽다. 따라서 저녁에는 단백질과 채소를 충분히 포함한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 것이 야식을 예방하는 첫걸음이다. <제주대학교병원 영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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