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5월 18일에 시작된 '탱크데이' 논란이 아직 가라앉지 않고 있다. 회사는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으나, 공교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5월 18일이라는 날짜와 '탱크'라는 조합은 오래된 폭력의 형상을 빌려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찔렀다. 문제는 의도의 유무보다, 그 조합이 불러일으킬 역사적 마찰을 미처 감각하지 못한 데 있을지 모른다.
바로 다음 날, 타이완 작가 양솽쯔의 '1938 타이완 여행기'가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중국어 원작 소설 최초, 타이완 작가 첫 수상이었다. 소설은 1938년 일제강점기 타이완을 배경으로, 일본인 여성 소설가 치즈코와 타이완인 통역사 왕첸허가 함께 음식을 맛보며 여행을 이어가는 우정의 기록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친밀성으로 봉합된 식민과 피식민의 위계가 겹겹이 스며 있다. 두 사건은 얼핏 무관해 보이지만, 하루 간격으로 전해진 탓인지 불쑥 불편한 질문으로 돌아왔다.
치즈코는 왕첸허를 진심으로 아끼지만, 두 사람의 친밀성은 처음부터 평등한 관계 위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치즈코에게 왕첸허의 일본어는 낯선 땅에서 건네진 다정한 목소리이지만, 왕첸허에게 그것은 식민지 교육 제도와 제국의 국어 정책을 통과해 얻어낸 생존의 언어다. 치즈코가 감사의 표시로 사시미를 대접하는 장면에서 두 사람의 긴장은 선명해진다. 호의는 진심이었으나, 왕첸허는 본섬 사람은 사시미의 참맛을 느끼지 못한다고 조용히 말한다. 치즈코의 다정함은 진심이었지만, 그것은 '내지인'의 가치와 취향을 기준으로 설계된 진심이었다.
역사 감수성은 과거의 사건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악의를 품었는가의 문제와는 조금 다르다. 그것은 과거의 폭력이 현재의 구조와 감각, 일상적 언어 속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 있는지를 감지하는 능력에 가깝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 재판을 분석하며 역사적 폭력이 특별한 악의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가 주목한 것은 스스로 판단하기를 멈춘 상태, 곧 '생각하지 않음'이었다. 역사 감수성의 부재 역시 이 '생각하지 않음'과 닿아 있다. 누군가는 나쁜 의도 없이도 이미 주어진 언어와 이미지 안에서 폭력의 기억을 다시 불러낼 수 있다. '탱크데이'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국가폭력과 민주주의의 기억이 겹쳐 있는 날짜 위에 아무런 망설임 없이 '탱크'라는 말을 올려놓을 수 있었다면, 그것은 실수의 규모보다 감각의 결핍에 가까운 문제다.
치즈코는 자신의 선의가 왕첸허에게 온전히 닿지 못한다는 사실을 감지한다. 그러나 그 어긋남은 자신이 딛고 선 구조에 대한 성찰로까지 깊어지지 못한다. 소설은 식민지적 우정의 불가능성을 말하면서도 감정의 진실을 지우지 않고, 그 감정이 기대고 있는 위계를 끝내 불편한 상태로 남겨둔다. 어쩌면 "좋은 마음이었다", "의도하지 않았다"는 말은 진실 여부보다도, 자신이 얼마나 둔감했는지를 감추는 데 더 가까운 표현인지 모른다. <김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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