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한림리와 수원리 사이에 있는 마을로, 기억하려면 앞 글자만 따서 읽으면 된다. 역사적으로 옛 지명 기록은 잠수포(潛水浦)다. 고려 목종 5년(1002년) 해상 화산폭발에 비양도가 형성되던 시기, 커다란 해일로 바닷가 마을 사람들이 대거 참변을 당했다는 기록으로 볼 때 그 이전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해안도로가 한림항에서 수원리까지 큰 규모로 지나가기 전의 마을 풍경을 기억하고 있는 필자에게는, 섬 제주에서 바닷가 조간대가 주는 풍요를 가장 많이 간직한 마을이라는 인식이 뿌리 박혀 있다.
밀물 때의 풍경과 썰물 때의 풍경이 너무도 판이하게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경이로운 변화. 썰물에는 육지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던 곳이 바닷가 용천수인 솔페기물과 하물이 물에 잠길 정도로 만조가 되면 섬처럼 마을과 떨어지게 된다. 마을 주민들이 톤대섬이라고 불러온 섬. 바닷물로 둘러쳐진 존재는 어쨌거나 섬이라는 인식이 그렇게 부른 것이리라. 그렇게 커다란 바닷가 조간대의 범위는 풍요로운 바다자원들의 낙원이 됐을 것이다. 그러한 자연환경의 혜택 속에서 얻은 수산물들은 해녀는 물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가가 얻을 수 있는 조건이 됐을 것이다.

김도경 이장
방파제가 없던 옛날에는 큰 파도를 막아주는 자연 방패가 되었을 톤대섬. 북서풍이 심하게 불어도 해변 상황은 안온함이 감돌던 마을. 그곳은 지금 한림항과 밀접한 경제적 관계에 있다. 그저 바다와 관련된 어촌계 구성원들의 생업 여건으로 인식할 수 있으나 마을 전체가 한림항과 인접하고 있으니 어촌계 구성원뿐만 아니라 생활환경 측면에서도 영향이 크다고 한다. 해안도로가 나면서 톤대섬은 섬이 아닌 육지의 일부분이 됐으며 한림항의 거대한 방파제로 진입할 수 있는 입구가 됐다. 대형차가 아니면 방파제 위에 쭉 뻗은 길로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다. 이러한 시원한 느낌의 시각적 요인이 비양도와 어우러져 발생시키는 서정성이 방문객들에게 크나큰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비양도 방문을 위해 타고 가야 하는 도항선의 매표가 한수리 영역에서 이뤄지고 있다 보니 성수기에는 주차난이 심각하다고 한다. 이러한 자동차 시대에 고질적인 피해가 지속적으로 민원 제기돼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행정노력이 없어 이구동성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관광산업이라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 주민들이 피해를 본다면 이에 상응하는 조치가 있어야 당연한 것. 상황 극복을 위한 해법을 찾아 실천적 행정행위가 있어야 한다. 마을해안 매립지는 국가소유관리이기 때문에 해운항만청을 주차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조상 대대로 이곳을 생활공간으로 살아온 주민들이 권한을 박탈당하고 주차난과 소음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불합리를 해결해야 한다. 국민주권정부라는 타이틀이 그냥 공염불이 되지 않도록.
김도경 이장에게 한수리가 보유하고 있는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간명하게 대답했다. "배려심",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묵시적 불문율과 같은 마을공동체의 정신문화. 양반고을다운 심성과 그에 걸맞은 격조라고 해야겠다. 이기주의가 들어설 어떤 구석도 없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보편타당성. 이웃, 마을 생각을 자신의 집안일보다 먼저 생각하는 풍토는 배려하는 마음자세로 마을문화가 된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정신을 입증하는 사례를 소개한다. 어촌계가 만든 건물을 가지고 이익 창출을 할 수 있음에도 관리운영권을 마을회가 가지도록 양도한 사실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상위조직이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은 쉽게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종합복지회관 건물을 신축하고 있는데 그 부지가 노인회 소유였다. 이를 매각한 금액 전부를 어르신들이 모아 마을회에 기부한 사실은 배려문화가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개인이나 단체의 이익보다 마을공동체의 공익을 우선순위에 두는 가치관이야말로 이 시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일이다. <시각예술가>
어떤 정신문화<연필소묘 79cm×35cm>
정겨운 올레가 그대로 남아 우리네 정신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마을 안 길은 좁으나 그만큼 이웃 사이의 정은 깊어 보인다. 좁은 길에 4할 정도를 차지한 팽나무 몸통. 가지는 뻗어 집담 세 곳을 넘어섰다. 나뭇가지 기준으로 공동소유다. 수령이 최소 200년은 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저 나무 밑에서 얼마나 많은 대화가 오갔을까? 그 이야기들을 모두 저장장치에 기억하고 있을 풍성한 나무를 그렸다. 오래된 흑백사진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돌담의 질감을 그대로 살리려면 채색을 했을 경우에 그 서정성이 사라질 것 같아서 연필 한 자루로 저 깊이를 끄집어냈다. 태양광선의 강도는 이미 여름 뙤약볕이다. 오랜 세월이 빚어내는 올레의 그림자를 주제로 그리려 하였다. 더위에 지쳐 땀범벅이 된 몸을 잠시 저 그늘에 의지하여 식히던 조상들의 일상을 떠올리려 한 것이다. 발전과 변화에 탐닉하는 시대, 조상들의 넋이 깃든 것 같은 고목을 그대로 두는 마음씨. 저 나무가 없으면 자동차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으나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는 사람들의 심성을 그리고자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걸어 다니던 길이니 그냥 걸어서 다니면 나무는 온전하리라는 생각. 깊고도 깊은 한수리 사람들의 정신적 풍요를 느끼게 된다. 집담들이 눈부신 햇살에 서로가 서로를 견고하게 연결하며 빛나고 있다. 회화적 관점에서 이처럼 밀도 있는 구성을 찾기 힘들다. 풍경화는 대상을 화폭에 담기 위하여 어느 부분부터 어떻게 잘라내느냐에 달렸으므로.
집과 섬, 섬과 집<수채화 79cm×35cm>
경이로운 풍경이 있는 마을. 한림항 동쪽 해안도로변에서 비양도를 바라보면 작고 소박한 슬레이트 건물 하나가 있다. 멀리 비양도가 자식을 품고 있는 느낌을 받아서 그렸다. 스케치 단계에서 얻은 생각 때문에 비교할 수 없는 환희를 느꼈다. 섬은 결국 생태계의 집이라는 생각. 섬이라는 바다 위의 작은 둥지가 집이 되어 우리의 안식처가 된다는 사실. 그 메시지를 놀랍도록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소중한 결합법칙을 그리기 위해서는 서양화의 명암법만 가지고서는 불가능하다. 동양의 산수화가 발전시킨 거리감 표현 방식까지 동원하지 않으면 이 넓은 공간의 진면목을 드러낼 수 없다. 하늘을 산수화처럼 여백으로 그냥 두어야 공간감과 광선의 양이 더 증폭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절묘함을 만날 수 있다.
저 집이 들어선 돌담 축대 안 부지에 대한 사연을 들었다. 지금 90대 어르신들이 젊은 날 연탄재와 자갈흙들을 지고 날라서 오직 노동력에 의해 매립한 곳이라고 한다. 마을공동체 소유의 땅을 얻고자 하는 집념에 가까운 노력. 하지만 공유수면에 만든 매립지는 국가소유이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은 어떤 활용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실망과 좌절감이야 필설로 형언할 수 없는. 개인 소유도 아니고, 거대한 환경훼손 개발을 하는 것도 아닌 100평 조금 넘는 공간, 마을공동체가 활용하여 뜻깊은 일을 못하니. 저 땅의 소중한 가치를 알리기 위하여 풍경화에 작위적인 색칠을 했다. 지붕을 황금으로 도금해 버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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