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우의 목요담론] 돌봄은 사회를 지탱하는 기반이다

[송창우의 목요담론] 돌봄은 사회를 지탱하는 기반이다
  • 입력 : 2026. 04.30(목) 02:00  수정 : 2026. 04. 30(목) 09:09
  • 송창우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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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요즘 제주의 아침은 서늘하다. 그러다가 낮이 되면 햇빛이 산하에 오래 머문다. 보리밭은 하루가 다르게 짙어진다. 봄 바다도 넘실댄다. 사람들의 몸은 먼저 계절을 알아챈다. 해녀들은 물때를 보고, 농부는 바람의 방향을 보고, 노인들은 무릎의 통증으로 비를 먼저 안다. 섬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자연과 서로의 몸을 살피며 사는 일이다. 돌봄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돌봄은 병원이나 복지관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훨씬 오래되고 조용한 곳에서 시작된다. 새벽에 어르신의 약을 챙기는 손, 학교에 가기 전 아이의 옷깃을 여며주는 손, 늦은 밤 가족을 기다리는 마음. 이런 것들은 기록되지 않는다. 통계에도 잡히지 않고, 월급명세서에도 적히지 않는다. 하지만 이 보이지 않는 시간이 없으면 하루는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돌봄은 생존의 기술이었다. 제주는 이러한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해녀는 혼자 물질하지 않았고, 밭일 역시 수눌음을 통해 서로의 손을 빌렸다. 아이들은 한 집이 아니라 마을 전체가 키웠다. 섬에서는 누군가를 버리는 일이 결국 모두를 위험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점점 혼자 버티는 법만 배우고 있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일을 그만두고, 병든 부모를 돌보다가 직장을 포기하고, 장기요양의 본인 부담금과 간병비가 쌓이면서 가계가 무너지고 있다. 출산율이 낮다고 말하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어서 망설인다. 노인을 모시는 일이 미덕이 아니라 공포가 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이미 돌봄의 균열이 시작된 것이다.

함께 아이를 돌보던 마을의 시간도 옅어졌다. 관광객은 늘었지만 정작 오래 살아온 사람들은 더 고립되고 있다. 혼자 사는 노인이 많아지고, 청년은 일자리를 찾아 섬을 떠난다. 돌봄이 공동체의 일이 아니라 가족 한 사람의 짐이 되는 순간, 섬은 가장 먼저 흔들린다.

그래서 돌봄은 복지가 아니라 기반이다. 도로가 끊기면 마을이 멈추듯, 돌봄이 끊기면 삶이 멈춘다. 누군가 집에서 노인을 돌보고 있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는 출근할 수 있다.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어야 젊은 부부는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 돌봄은 비용이 아니라, 내일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가족이 혼자 감당하던 것을 사회가 함께 나누면, 돌보던 사람은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고, 돌봄 자체가 새로운 일자리가 된다.

앞으로의 사회는 더 오래 살고, 더 적게 낳고, 더 천천히 성장할 것이다. 이 조건에서 돌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기술도 사람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서로를 더 오래 돌볼 수 있도록 돕는 방향이어야 한다. 돌봄이 사라지면 가장 먼저 삶의 온도가 달라진다.

돌봄은 누군가의 희생이 아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남기 위해 오래전부터 선택해 온 가장 오래된 미래다. <송창우 제주와미래연구원장·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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